최악의 아파트

'좋은 동네에 안좋은 집을 사라'

부동산 투자의 격언이다. 이 격언은 투자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나 같이 세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지는 않는 말이었다. 처음 들어간 그 아파트에 관한 몇가지를 적어볼까 한다. (지은지 100년이 다 되어 가던...) 유학가거든 집은 좋은데 구하길 바란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소음이다. 요즘 한국에선 층간 소음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난 옆집의 소음이 문제였다. 옆집에는 싸이코가 한명 살았는데, 한달에 한두번 밤에 잠을 자다가 갑자기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거기다가 가끔은 여자친구와 전화로 싸우는지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기가 다반사였다. 문앞에 노트를 적어서 붙여도 보고, 소리를 같이 질러 보기도 했지만, 그 싸이코를 조용히 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일년 반동안 그 산발적인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싼방에 살다보니 단열이 될리도 없었다. 두번의 겨울을 그곳에서 보냈는데, 첫해는 정말 사정없이 추웠다. 시카고의 겨울이 춥기도 하였지만, 위풍이 들어오는 그 방에서 오개월에 가까운 버텨낸 나 역시도 되돌아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창문도 틀이 잘 맞지 않아 바람이 많이 들어왔는데, 집에서 밥을 하면 수증기가 창문에 붙어 얼어버려 결국엔 얼음 때문에 창문에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정말 이모가 준 오리털 이불이 없었다면 얼어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듬해엔 아파트 시설관리인에게 말해 유리창을 모조리 실리콘으로 막아 버렸다. 화재가 나면 위험했으나, 일단 추위를 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추우면 옷장에 가서 자곤했다.

가끔 설거지를 안해놓으면 바퀴벌레들이 들끓었다. 하루는 잠을 자고 있는데, 이상한 느낌이 나 방에 불을 켰다. 사방에 바퀴벌레들이 놀고 있었다. 잠시 방을 치우고 난뒤 다시 잠이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 사건 이후로는 절대로 설거지를 쌓아놓지 않았다. 바퀴벌레약도 사서 사방에 깔아놓았다. 다행히 효과가 있어 바퀴벌레를 그 이후엔 자주 만나지 못했다. 오래된 집이라 물도 문제였다. 배관 공사를 자주 해서 가끔 물이 안나왔다. 배관역시 오래되어서 샤워를 하면 금속가루가 하얀 욕조에 보이기 일수였다.

옆집의 싸이코를 제외하고 이웃들은 좋았다. 같은날 이사하던 볼리비아 출신 남자와 미국 여자 부부가 있었는데, 이들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볼리비아 출신 남자는 페르난도 였고, 여자는 이름을 까먹었다. 페르난도는 볼리비아에서 막와서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으나, 잘생겼고 선해보였다. 미국 여자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볼리비아에 가서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서야 멀쩡한 여자가 다른나라 친구와 미국에서 새 삶을 시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친구의 장인 어른과 장모도 만나보았는데, 미국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 우리나라 부모였다면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으리라.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베트남 부모를 둔 법률 공부를 하던 친구도 한명 있었다. 법률사무소에서 비서를 하면서 법대에 파트타임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일단 미국에서 직장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이 나는 부러웠다. 그당시 나는 한국에서 벌어놓은 돈은 있었으나 모조리 주식시장에 투자해 놓았고, 빚을 내어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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