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
2007년 4월 즈음 합격 통지를 받고 시카고에 도착할 때까지 난 시카고란 도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내가 가기로 한 학교도 아는 바가 전무했다. 그저 유학을 나가면 새로운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을 뿐이다. 미드(미국드라마)를 보면서 머리속에 든 선입견과 현실은 차이가 많았다.
미국 친구들과 유대를 쌓으면서 파티도 하고 회사에도 취직하는 아름다운 시나리오를 머리속에 그리면서 그 해 8월 미국땅을 밟았다. 시차적응도 할겸 멤피스에 있는 이모집에 먼저 가게 되었다. 이모집은 정확히 말하면 멤피스 근교에 있는 Collierville이라는 잘사는 동네에 있는데, 골프장 안에 있는 동네라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집 앞에는 조그마한 호수가 있어서 오리들이 항상 노닐고 있었다. 아름다운 미국 생활은 여기서의 일주일 이후 잠시(?) 미루게 된다.
여기서 일주일 가량 시차 적응을 하고 고맙게도 이모, 이모부께서 같이 시카고에 가 주셨다. 무려 9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인데, 같이 가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미국 땅.. 그 위에 끝없이 펼쳐진 농작물들.. 그리고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잘 갖춰진 고속도로.. 그 스케일에 놀라고 반하게 된다. 기회가 되면 꼭 미국 자동차 여행을 권하고 싶다.
한국에서 미리 알아본 아파트에 가서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방을 보러 들어갔다. 인터넷으로 본 사진과는 영 딴판이었다. 한달에 600불짜리 아파트였는데, 넓이는 한국에 15평 아파트 정도 되는 수준이지만, 실내 내용물은 정말 눈물 날 지경이었다. 입주하기 전에 보통 카펫 청소를 하거나 새로 깔아주는데, 아직 깔지 않아서 바닥이 드러나 보였는데 계약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들 정도였다.
그 당시 시카고 시내에 Studio 아파트가 천불정도 했으니, 600불을 내고 살면서 큰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했다. 그날 계약을 하고 Niles에 있는 '장충동' 이라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호텔에 들어가서 있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한국 사람이 방을 내놨는데 650불에 너무나 깔끔한 방이 나와 있었다. 바로 원래 계약한 아파트에 전화해서 취소하고, 다음날 그 집으로 갔다. 시카고 남쪽 32번가에 있는 아파트였다.
월마트에서 접이식 의자와 책상을 사고, 간단히 요리를 해먹을 수 있게 김치과 반찬 몇가지를 사서 이사를 했다. 아파트는 깔끔하고 좋았다. 방을 내 놓았던 한국 유학생도 첫 인상이 그렇게 좋진 않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싶어 그냥 그 집에 살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그날이 토요일이었다.
다음날인 일요일에 동네 구경을 한번 해보자고 가까운 상점에 구경을 갔다. 날씨는 맑았고 푸른 잔디밭은 걷기에 좋았다. Jewel Osco라는 식료품 가게에 들어갔는데, 가게에 들어서자 마자 뒤에서 흑인 한명이 '샬라샬라샬라'.....
정확히 머라고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사람의 말은 대략 '너 나랑 한번 붙어볼래?' 였던 것 같다. 그냥 살짝 웃어주고 말았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빨래 바구니를 사려고 매장 안을 돌아보는데, 충격적이게도 멀쩡한 제품이 하나도 없었다. 망가지고 부서지고, 매장안의 물건들은 이리저리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가게를 나와 동네를 돌아다녀보니 푸른 잔디는 파랗게 보이고, 동네 여기저기에 허름하게 옷을 입고 눈이 풀린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헐.....
싼 가격에 좋은 방이 있는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동네는 꾀나 위험한 동네로, 밤에 돌아다니면 안되는 곳이었고, 가끔 낮에도 강도를 당하는 곳이었다. 나는 곧장 처음 알아봤던 아파트에 전화를 했고,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차를 빌려 다시 이사를 했다. 이사를 가겠다고 집을 내 놓은 한국 유학생에게 말을 했더니, 한달치 월세를 내고 가야 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멘붕상태.. 650불이면 그 당시 두달 용돈이었다.
겨우 이틀 있었는데 650불 이라니.. 게다가, 이사를 도와줄 사람을 혹시 아냐고 했더니, 적어도 한사람당 100불은 줘야 한다는 말을 했다. 외국땅에서 가끔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한다는데, 100불은 전문 이사센터에 맡길 때 받는 금액이었다. 이년뒤에 또 한번 사기를 당할 뻔 했는데, 그건 나중에 얘기하겠다.. 아무튼 그건 너무 많고, 250불을 책상에 두고 나왔다. 먹고 떨어져라는 심정으로...
월요일에 그냥 혼자 이사를 했다. 몇개 되지 않는 살림살이였지만, 미니벤에 넣으니 꽉 차게 되었다. 하늘은 흐리고 비가 내릴 것 같았다. 혼자 오르락 내리며 물건들을 나르고, 그때마다 도둑 맞을까봐 차 문을 잠그느라 고생했다. 그러다 밥통에 넣어 옮기던 유리 김치병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열무김치였는데, 깨진 김치병을 보아하니 내 신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울고 싶었지만, 동네가 동네인지라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오기로 그 김치병은 끝까지 가지고 가, 유리를 골라내고 그 김치를 한동안 먹었다.
안좋은 일은 연속으로 일어난다고, 렌트한 미니벤을 반납하려고 가는데, 경찰이 뒤에서 '찌리찌리' 하는 불쾌한 경적을 울려댔다. 길가에 세우고 나니, 불법유턴을 했다면서, 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여권과 국제면허증을 주니 한참 경찰차에 가서 조회를 했다. 한 십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그 땐 될대로 되라.. 라는 심정이었다. 다행히 이번이 처음이니 다음부턴 조심하라고 하고 보내주었다.
렌트카를 반납하고, 지하철을 타고 Edgewater에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처음으로 시카고 시내와 미시건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아... 다시 뚜벅이로, 이 황량한 도시에 살아가야겠구나... 지금 보면 아름다운 시카고 전경이 그 때는 너무 우울하고 벗어나고만 싶었다.
아파트에 도착하니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동네는 역사가 깊은 동네로 아파트들이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20층 아파트를 조선시대에 지어냈다니..... 아직도 멀쩡히 서 있는 건물들이 많다. 사람들도 32번가 보다는 멀쩡해 보였다.
대충 밥을 해서 먹고, 잠이 들었다. 깨고 싶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지쳐있었다.
미국 친구들과 유대를 쌓으면서 파티도 하고 회사에도 취직하는 아름다운 시나리오를 머리속에 그리면서 그 해 8월 미국땅을 밟았다. 시차적응도 할겸 멤피스에 있는 이모집에 먼저 가게 되었다. 이모집은 정확히 말하면 멤피스 근교에 있는 Collierville이라는 잘사는 동네에 있는데, 골프장 안에 있는 동네라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집 앞에는 조그마한 호수가 있어서 오리들이 항상 노닐고 있었다. 아름다운 미국 생활은 여기서의 일주일 이후 잠시(?) 미루게 된다.
여기서 일주일 가량 시차 적응을 하고 고맙게도 이모, 이모부께서 같이 시카고에 가 주셨다. 무려 9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인데, 같이 가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미국 땅.. 그 위에 끝없이 펼쳐진 농작물들.. 그리고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잘 갖춰진 고속도로.. 그 스케일에 놀라고 반하게 된다. 기회가 되면 꼭 미국 자동차 여행을 권하고 싶다.
한국에서 미리 알아본 아파트에 가서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방을 보러 들어갔다. 인터넷으로 본 사진과는 영 딴판이었다. 한달에 600불짜리 아파트였는데, 넓이는 한국에 15평 아파트 정도 되는 수준이지만, 실내 내용물은 정말 눈물 날 지경이었다. 입주하기 전에 보통 카펫 청소를 하거나 새로 깔아주는데, 아직 깔지 않아서 바닥이 드러나 보였는데 계약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들 정도였다.
그 당시 시카고 시내에 Studio 아파트가 천불정도 했으니, 600불을 내고 살면서 큰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했다. 그날 계약을 하고 Niles에 있는 '장충동' 이라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호텔에 들어가서 있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한국 사람이 방을 내놨는데 650불에 너무나 깔끔한 방이 나와 있었다. 바로 원래 계약한 아파트에 전화해서 취소하고, 다음날 그 집으로 갔다. 시카고 남쪽 32번가에 있는 아파트였다.
월마트에서 접이식 의자와 책상을 사고, 간단히 요리를 해먹을 수 있게 김치과 반찬 몇가지를 사서 이사를 했다. 아파트는 깔끔하고 좋았다. 방을 내 놓았던 한국 유학생도 첫 인상이 그렇게 좋진 않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싶어 그냥 그 집에 살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그날이 토요일이었다.
다음날인 일요일에 동네 구경을 한번 해보자고 가까운 상점에 구경을 갔다. 날씨는 맑았고 푸른 잔디밭은 걷기에 좋았다. Jewel Osco라는 식료품 가게에 들어갔는데, 가게에 들어서자 마자 뒤에서 흑인 한명이 '샬라샬라샬라'.....
정확히 머라고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사람의 말은 대략 '너 나랑 한번 붙어볼래?' 였던 것 같다. 그냥 살짝 웃어주고 말았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빨래 바구니를 사려고 매장 안을 돌아보는데, 충격적이게도 멀쩡한 제품이 하나도 없었다. 망가지고 부서지고, 매장안의 물건들은 이리저리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가게를 나와 동네를 돌아다녀보니 푸른 잔디는 파랗게 보이고, 동네 여기저기에 허름하게 옷을 입고 눈이 풀린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헐.....
싼 가격에 좋은 방이 있는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동네는 꾀나 위험한 동네로, 밤에 돌아다니면 안되는 곳이었고, 가끔 낮에도 강도를 당하는 곳이었다. 나는 곧장 처음 알아봤던 아파트에 전화를 했고,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차를 빌려 다시 이사를 했다. 이사를 가겠다고 집을 내 놓은 한국 유학생에게 말을 했더니, 한달치 월세를 내고 가야 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멘붕상태.. 650불이면 그 당시 두달 용돈이었다.
겨우 이틀 있었는데 650불 이라니.. 게다가, 이사를 도와줄 사람을 혹시 아냐고 했더니, 적어도 한사람당 100불은 줘야 한다는 말을 했다. 외국땅에서 가끔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한다는데, 100불은 전문 이사센터에 맡길 때 받는 금액이었다. 이년뒤에 또 한번 사기를 당할 뻔 했는데, 그건 나중에 얘기하겠다.. 아무튼 그건 너무 많고, 250불을 책상에 두고 나왔다. 먹고 떨어져라는 심정으로...
월요일에 그냥 혼자 이사를 했다. 몇개 되지 않는 살림살이였지만, 미니벤에 넣으니 꽉 차게 되었다. 하늘은 흐리고 비가 내릴 것 같았다. 혼자 오르락 내리며 물건들을 나르고, 그때마다 도둑 맞을까봐 차 문을 잠그느라 고생했다. 그러다 밥통에 넣어 옮기던 유리 김치병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열무김치였는데, 깨진 김치병을 보아하니 내 신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울고 싶었지만, 동네가 동네인지라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오기로 그 김치병은 끝까지 가지고 가, 유리를 골라내고 그 김치를 한동안 먹었다.
안좋은 일은 연속으로 일어난다고, 렌트한 미니벤을 반납하려고 가는데, 경찰이 뒤에서 '찌리찌리' 하는 불쾌한 경적을 울려댔다. 길가에 세우고 나니, 불법유턴을 했다면서, 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여권과 국제면허증을 주니 한참 경찰차에 가서 조회를 했다. 한 십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그 땐 될대로 되라.. 라는 심정이었다. 다행히 이번이 처음이니 다음부턴 조심하라고 하고 보내주었다.
렌트카를 반납하고, 지하철을 타고 Edgewater에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처음으로 시카고 시내와 미시건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아... 다시 뚜벅이로, 이 황량한 도시에 살아가야겠구나... 지금 보면 아름다운 시카고 전경이 그 때는 너무 우울하고 벗어나고만 싶었다.
아파트에 도착하니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동네는 역사가 깊은 동네로 아파트들이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20층 아파트를 조선시대에 지어냈다니..... 아직도 멀쩡히 서 있는 건물들이 많다. 사람들도 32번가 보다는 멀쩡해 보였다.
대충 밥을 해서 먹고, 잠이 들었다. 깨고 싶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지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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